공정전환(Just Transition) 넷제로 시대, 기업이 마주할 ‘보이지 않는 청구서’에 대비하는 법

기후변화와 산업 혁신으로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히 기술적 전환을 넘어 사회 경제 구조 전체의 대변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서 석탄 산업이나 내연기관 관련 산업 등 기존 방식에 의존하던 **일자리와 생계에 영향을 받는 사회, 지역, 기업**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들에게 공정한 보상과 재교육 기회,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며 안전하게 전환하는 것을 **공정전환(Just Transition)**이라고 합니다. 공정전환은 **기후 행동의 사회적 측면**을 담당하는 핵심 과제이자, **ESG의 ‘S(Social)’ 영역**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이슈로 부상했습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공정전환의 목표를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아무도 뒤쳐지지 않도록 하는 것(no one will be left behind)**’으로 명시했습니다. 이는 2015년 파리협정 서문에서부터 그 중요성이 강조되었으며, 탄소 중립 사회로의 전환이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비용과 실직, 지역 경제 침체 등 부정적인 요소를 모든 이해관계자가 **공평하게 분담**해야 하며, 전환의 혜택을 함께 공유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공정전환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기후 위기 대응이 곧 사회적 불평등 심화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리스크가 발생합니다. 기업은 사회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 공정전환을 핵심 전략으로 수립해야 합니다.

1. ‘제2의 넷제로’, 공정전환이 기업의 핵심 경쟁력인 이유

공정전환이 단순히 사회 공헌 차원의 이슈를 넘어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핵심 경쟁력**으로 불리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공정전환을 등한시하는 기업은 미래에 막대한 사회적, 경제적 비용을 지불하게 될 위험에 놓입니다.

  • **산업 구조 변화의 충격과 일자리 감소 리스크:** 탄소 중립 흐름은 산업 전 분야에 걸쳐 대규모 일자리 감소를 가져오는 **’일자리 빅뱅’**을 초래합니다. 예를 들어, 내연기관차가 전기차로 바뀌는 자동차 산업의 경우,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전기차 1만 대 생산에 투입되는 인력은 내연기관차의 38% 수준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효율적인 저탄소 기술로의 전환은 고용 불안정을 심화시키며, 기업의 인적 자원 관리와 리스크 대응 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기업은 이러한 구조적 변화를 선제적으로 예측하고 인력의 **역량 재개발(Reskilling) 및 재배치(Redeployment)** 계획을 수립해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 **갈등 유발 및 장기적인 비용 증가:** 산업 전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노동조합 및 지역사회와의 적절한 **사회적 대화(Social Dialogue)**가 없을 경우, 직원들은 고용 불안정을 느끼고 대규모 파업(예: 미국 자동차 ‘빅3’ 노조 동시 파업) 등 극단적인 갈등이 유발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갈등은 **생산성 저하, 기업 이미지 손상, 법적 분쟁** 등 예측 불가능한 장기적 비용 증가로 이어져, 공정전환 비용을 늦게 지불할수록 **’보이지 않는 미래 청구서’**가 커진다는 경영진의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은 안전 규제 강화는 공정전환 과정에서의 노동 환경 변화를 더욱 엄격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 **글로벌 투자자의 평가 및 규제 항목으로서의 부상:** 공정전환은 **’제2의 넷제로’**라고 불릴 만큼 탄소 중립 이행의 핵심적인 사회적 조건이며, 글로벌 투자자 그룹의 중요한 평가 항목입니다. 60조 달러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세계 최대 투자자 그룹인 **CA100+(Climate Action 100+)**는 공정전환 지표를 개발하여 기업의 넷제로 이행을 평가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의 **지속가능금융공시규제(SFDR)** 및 독일, 프랑스 등의 **공급망 실사법** 등에서도 사회적 요소로서의 공정전환이 강력하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를 무시할 경우 투자 유치 및 자금 조달에 직접적인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투자자들은 기업의 노동 관련 리스크와 지역사회 기여도를 중대하게 평가합니다.

2. 공정전환,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 이해관계자 중심의 글로벌 사례

공정전환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핵심은 **이해관계자별 전략**을 수립하고, **사회적 대화**를 제도화하는 것입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기업이 노동자, 지역사회, 정부, 투자자, 협력업체 등 5개 주요 그룹과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분석했습니다. 다음은 주요 글로벌 기업들의 성공적인 공정전환 사례입니다.

  • 직원 및 임직원 전환 지원 (Eni 사례: 선제적 역량 재개발)

    이탈리아 에너지 기업 에니(Eni)는 10년에 걸쳐 저탄소 업종으로 전환하는 동안, 임직원 개발 프로그램 **’피플 저니(People Journey)’**를 운영하며 인적 자본의 이탈을 막고 재활용했습니다. 특히, 내부 직원들을 위한 교육 플랫폼 ‘MyChange’를 신설하여 새로운 저탄소 직무(예: 재생에너지 발전, 탄소 포집 기술 등)에 필요한 역량을 미리 교육하고, 전환 가능한 신규 직무 정보를 공유하는 내부 직무 포스팅 플랫폼 ‘Job4U’를 운영하여 직무 전환을 내부적으로 지원했습니다. 이는 기업의 구조 변화를 수용하는 노동자의 동의를 얻는 핵심 기반이 되어 장기간의 대규모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 지역사회 협력 및 경제 활성화 (이베르드롤라 사례: 지역 경제 회생)

    스페인 전력회사 이베르드롤라(Iberdrola)는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후 해당 지역 경제의 급격한 침체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했습니다. 폐쇄된 부지에 1억 유로를 투자하여 태양광, 수소 등 **재생에너지 허브를 구축**하며 약 2,000개의 신규 일자리 창출 효과를 냈습니다. 또한, 지역 구성원들이 에너지 전환에 참여하도록 **’시민 혁신 플랫폼’**을 수립하여 지역 내 스타트업 육성, 중소기업 컨설팅, 직원 재교육 등을 수행하며 지역 경제의 구조적 전환을 지원했습니다. 이는 지역 사회의 반발을 최소화하고 기업의 신뢰도를 높이는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 발전소 부지의 용도 변경 다변화 (서던 컴퍼니 사례: 자산 활용 극대화)

    미국 에너지 기업 서던 컴퍼니(Southern Company)는 폐쇄된 화력발전소 부지를 단순히 방치하거나 매각하지 않고 **사회적 가치 및 경제적 효용**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활용했습니다. 이들은 폐쇄 부지를 미국 항만청과 협력하여 항만 확장 부지로 활용하거나, **생물 다양성 확보를 위한 시설**, 복합문화공간 조성, 혹은 새로운 에너지 저장 시설로 탈바꿈시키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유휴 자산을 다변화하여 지역 사회의 요구와 환경적 목표를 동시에 충족시켰습니다. 이러한 부지 재활용은 토지 오염 등 환경 문제를 줄이고 지역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효과를 줍니다.

3. 한국 기업을 위한 실무 가이드: 경영진의 의지와 직무별 역할 및 시스템 구축

공정전환 이행은 기업의 최고 경영진과 이사회의 전략적 의지가 필수적이며, 이는 **경영 시스템에 내재화**되어야 합니다. 한국 기업이 성공적으로 공정전환을 이행하기 위해 각 직무별로 요구되는 핵심 역할은 다음과 같습니다.

  • 최고 경영진 및 이사회: 공정전환을 핵심 논의 주제로 격상하고, **’공정전환위원회’**와 같은 거버넌스 기구를 설치하여 이사회 차원의 정기적인 감독 및 평가를 진행해야 합니다. CEO는 노조 및 지역사회와의 신뢰 구축을 위한 사회적 대화의 책임자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 인사(HR)팀: 탄소 중립 흐름에 따라 축소되는 사업 부문의 인력 규모를 예측하고, 신규 친환경 사업(예: CCUS, 수소, 재생에너지 등)으로 전환하기 위한 **재교육 및 재배치 프로그램**의 설계 및 실행을 주도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전직 지원, 조기 퇴직 지원 프로그램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재무(Finance)팀: 공정전환을 위한 기금 조성 등 **지속 가능한 자금조달 메커니즘** 구축을 주도해야 합니다. 정부 및 지자체의 세금 감면, 보조금, 저금리 대출 등의 정책 자금과 기업 자체적인 자금 조달의 적절한 조합을 탐색하고, 공정전환 관련 재무 정보를 투명하게 공시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 대관(Government Relations) 및 커뮤니케이션팀: 정부 및 지자체의 정책 흐름(예: 한국의 ‘탄소중립 산업 전환 특별법’)을 정확히 파악하고, 민관 협력을 통해 공정전환 및 탈탄소 사업 포트폴리오의 성공적인 정착을 이끌어야 합니다. 노조 및 지역사회와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대화 채널을 상시 운영하는 것이 핵심 역할입니다.
  • 공급망 관리(SCM)팀: **공급망 전반의 공정전환 위험**을 파악하고, 협력업체의 고용 안정 및 기술 전환을 위한 지원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는 유럽연합의 공급망 실사 의무화 등 글로벌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필수적인 조치입니다.

공정전환: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가장 확실한 투자

탄소 중립으로의 전환은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할 것을 요구하는 피할 수 없는 흐름입니다. 공정전환을 늦게 준비하면 할수록 기업이 지불해야 할 **’보이지 않는 미래 청구서’** 또한 커지고, 이는 잠재적 리스크(파업, 소송, 투자 철회)로 현실화될 수 있습니다. 기업은 공정전환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최고 경영진의 강력한 리더십 하에 구체적인 직무별 이행 로드맵과 측정 지침을 마련하여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공정전환은 **단순한 사회적 의무가 아닌, 기업의 장기적인 생존과 성장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투자**입니다.

댓글 남기기